• 카카오티비
  • 로그인
  • 회원가입
이열치열(以熱治熱)과 이한치열(以寒治熱)
이열치열(以熱治熱)과 이한치열(以寒治熱)
  • 유영욱 시민기자
  • 승인 2019.08.12 10:0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한일 경제전쟁을 바라보는 또 하나의 관점

말복이 지났어도 아직은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요즘 우리 조상의 지혜와 습속을 생각해 본다. 본시 우리 조상들은 이열치열(以熱治熱)이라 하여 더운 여름날에는 뜨거운 삼계탕이나 육개장, 혹은 개천에서 잡은 민물고기들을 푹 고은 매운탕 등으로 더위를 이겨왔으며, 추운 엄동설한에는 뜨끈한 아랫목에서 시원한 냉면을 먹으며 이한치한(以寒治寒)으로 추위를 견뎌왔다.

그런데 이런 습속도 이젠 많이 사라지고, 요즘은 이열치열(以熱治熱)이 아니라 이한치열(以寒治熱)로 더위를 견디는 것이 보편화되고 있다. 뜨거운 날씨를 숲 그늘의 자연풍이나 부채질로 이기는 것이 아니라 냉방이 잘 된 실내에서 땀방울 없이 지내다가 차가운 냉면을 먹고, 시원한 빙수나 아이스크림, 혹은 얼음 동동 음료수로 더위를 잊고 지낸다. 땀 쭉 흘리며 먹던 삼계탕도 이젠 시원한 실내에서 땀 흘리지 않고 즐기는 시대가 된 것이다.

사라져가는 습속을 아쉬워하고, 조상의 지혜가 스러져가는 것을 아쉬워 할 수는 있다. 하지만, 기술의 발달이 가져다 준 쾌적함을 애써 외면하고 무더위와 일부러 싸움을 하는 것은 해수욕장에 가서나 할 일이 되어 버린 것을 안타까워 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기술의 발달로 생활이 편해진 것을 즐기는 것이 비도덕적도, 나쁜 일도 아니다. 오히려, 평소에는 시원함 냉방과 찬 음식으로 이한치열을 하다 가끔은 운동이나 여행으로 땀을 흘리며 이열치열을 하는 요즘 세대가 현명하다고 하여야 할 것이다.

사람과 사람의 관계, 나라와 나라의 관계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한 역사가는, ‘외교는 피를 흘리지 않는 전쟁이며 전쟁은 피를 흘린 외교’라고 말했다. 현재 한국과 일본 사이에 벌어지고 있는 경제전쟁은 피를 흘리지 않는 전쟁이니 외교의 범주에 속한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그런데 전쟁은 열전이 있고 냉전이 있다. 제2차 세계 대전과 625전쟁, 베트남해방전쟁 등 우리의 피가 흐른 전쟁들은 열전이고, 2차 세계대전 후의 공산권과 서구의 대치국면이 냉전에 해당하며, 남북한은 현재도 냉전 중에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그러면 일본과 한국은 어떤 상태일까? 분명한 것은 현재 한일 경제전쟁은 일종의 냉전이지만, 이 냉전이 이번에 시작된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어찌 보면 한국은 일본과 일제 강점기부터 전쟁 중이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일본의 식민통치가 종료 할 때까지는 독립군과 윤봉길, 이봉창 열사 등에 의한 열전이 이어졌다면, 해방 후는 냉전의 시대에 접어들었다고 보는 것이 정확할 것이다. 다만 분단 상황과 625, 그리고 미국이라는 후견국가의 영향으로 한국과 일본의 냉전이 표면화되지 못하고 심층의 저류에서 진행되어왔던 것이다.

이런 냉전이 갑자기 뿜어져 나올 때가 있다. 바로 한일의 스포츠 대결이다. 우리 국민은 다른 나라와의 스포츠 경기에서 승패에 그리 연연하지 않는다. 경기 자체를 즐기기도 하고, 패배할 경우에도 잘 배웠다고 스스로 위로하기도 한다. 그런데, 한일전은 다르다, 한일전은 그 종목이 어떻든 간에 선수와 관중 모두 반드시 이겨야 한다는 사명감에 불타오른다. 한일전은 단순한 스포츠가 아니다. 스포츠의 형태를 한 전쟁이다. 그러니 무조건 이겨야 한다는 사명감으로 가끔은 기적을 창조해 내기도 한다. 이 점은 일본도 마찬가지인지, 일본의 스포츠 선수들도 한국전에 패하면 유달리 분해한다.

현재 벌어지고 있는 한일 경제전쟁은 어떨까? 그 저변을 들여다보면 두 가지가 보인다. 첫째, 일본의 입장에서 보자면, 식민지였던, 그래서 경제적으로 원료공급지이자 소비시장으로 종속적 위치였던 한국의 경제가 무섭게 성장하더니 언제부터인가 일본의 경제와 경쟁을 하게 된 것이 매우 아니꼽게 보였을 것이다. 특히 일본이 잃어버린 10년을 거치는 동안 한국의 경제는 일본 종속에서 서서히 벗어나고 있다고 보여진다. 또한 한국이 한류라는 문화콘텐츠로 일본인의 마음을 사로잡아 가는 경향도 한국에 대한 경계를 강화시킨 요인이 되었을 것이다. 90년대까지는 일본의 문화콘텐츠가 일방적으로 한국으로 유입되는 상황이었는데, 슬슬 한국의 문화콘텐츠가 일본으로 유입되더니 이제는 그 질과 양에서 한국 문화콘텐츠의 유입이 일본 문화콘텐츠의 한국유입을 압도하고 있다. 이런 상황이 지속되다 보면, 한국이 일본을 추월할 것이니, 그 전에 한 번 꺾어야 한다는 생각을 일본의 정치인들과 오피니언 리더들이 하게 된 것이며, 이 점이 일본 국내에서도 그 불합리성이 지적됨에도 아베정부의 폭주를 나서서 막는 세력이 없는 이유일 것이다.

한국의 입장에서 보자면 좀 더 복합적인 감정이 작용한다. 과거 한국의 정계, 재계, 그리고 문화계가 일본에 열등감을 느끼던 것은 사실이다. 똑같이 전쟁의 피해를 입었음에도, 아니 일본이 더 큰 피해를 입었음에도 일본은 경제적으로 빨리 일어서고, 일본 문화콘텐츠가 세계로 뻗어 나가는 것을 보며 착잡했을 것이다. 특히 일본의 경제 재건이 한국이 625라는 유례없는 참상을 겪는 와중에 한국전쟁의 전쟁특수로 이루어지는 것을 보면서, 그 원류가 한국에 있는 문화콘텐츠가 일본화 되고 세계화되는 것을 보면서 약이 많이 올랐을 것이다.

그런데 이런 심정적 열등감이 이제는 많이 바뀌었다. 특히 한국의 젊은 세대들은 일본에 열등감을 느끼지 않는다. 경제적으로도 일부 분야지만 일본을 앞서 간다는 자의식이 있고, 정치에서는 시민혁명으로 정치를 개혁한 한국의 입장에서 볼 때 일본의 정치는 후진적이다. 또한, 한국의 문화콘텐츠가 일본과 세계로 확산되는 것을 보면서, 일본인들이 한국 연예인에 열광하는 것을 보면서 일본에 대한 열등감은 이미 멀리 사라져버렸다. 오히려 기성세대가 일본에 대해 가지는 열등감의 잔재를 이해하지 못할 현상으로 치부한다. 일본의 문화 중 마음에 드는 것을 즐기되, 그건 선호의 문제지 일본 문화를 동경해서 그런 것이 아니라는 것을 분명히 밝힌다.

한일 경제전쟁, 분명한건 아직은 냉전이다. 그런데 양상이 다르다. 냉전이긴 한데 정치와 경제와 같은 상부구조 뿐 아니라 국민들 대다수가 참전하는 총력전의 형태가 되고 있다. 그것도 자발적인 총력전이며, 더욱이 ‘아베로 대표되는 일본의 정치세력과 경제계를 비판하는 것이지 일본사람 전체를 미워하는 것이 아니다’라는 분별력을 가지고 성숙한 대응을 하고 있다. 마치 놀이처럼 즐기면서 대응을 하는 것이다. 더위를 이기는 방법이 이열치열 뿐 아니라 이한치열도 가능하다는 것을 실천하고 있는 세대들의 참전인 것이다.

여기에 비하여 일본은 아직은 정치계가 참전하고 있을 뿐이다. 일본 국민의 대다수는 이 전쟁에 참전할 의사가 없어 보인다. 일본인의 정치에 대한 무관심도 이를 조장했을 것이다.

이런 상황을 고려하면, 이 전쟁은 단기간의 전투에서는 한국이 패배하는 경우도 나올 수 있지만 장기간의 전쟁에서는 필히 승리할 것이 분명하다. 국민들의 자발적인 참여로 이루어진 총력전을 펼치는 나라, 그것도 이한치열의 논리로 즐기면서 참전하는 국민들이 있는 나라와 일부 계층이 전투를 펼치는, 그것도 상당수는 할 수 없이 따라가는 나라, 어디가 승리할지는 명백하다.